[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발전이고 개발인가] - (4)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
(1) 천의 얼굴을 가진 국제개발
(2) '우리식' 답을 팝니다. 남이야 어떻든?
(3) 발전(development), 개념의 디플레이션
(4)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
(5) 성찰, 온 책임을 다해 함께 잘 사는 일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
트루먼의 선언 이후 반세기 동안 국제개발(학)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자. 1950년와 1960년대는 산업화와 GNP의 증가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성장의 시대였다. 도시와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한 산업화가 사회 전반에 고른 혜택을 가져다 준다는 낙관이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발전의 개념을 지배했고, 이때 개발은 서구 선진국으로부터의 원조를 통해 산업화를 촉진하는 일련의 투자를 뜻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에 이르면 성장에 대한 낙관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GNP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트리클다운 효과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영유아 사망률은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높아졌고, 사회 전반에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경제지표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물, 위생시설, 최소한의 소득과 고용 같은 기본 요구 (Basic Needs)를 충족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1970년대를 지배한 사회개발 (Social Development)이 설득력을 얻으며 부상한다. 발전의 목표가 경제성장을 넘어 인간발전 (human development)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UNDP (유엔개발계획)을 중심으로 한 국제개발 커뮤니티로부터 경제성장의 결과로 인간의 기본 요구가 자연스럽게 충족될 것이라는 가정을 버리고, 발전의 과정에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통해 이제까지 도시에만 집중되던 원조가 지역 개발 (Rural Development)의 이름으로 농촌과 소농에게 지원됐고, 발전의 과정에 한 사회 내의 모든 인구 집단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불가피하게 소외되거나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국제개발의 주요 주제로 부상했다. 1990년부터 유엔개발계획 (UNDP)가 펴내고 있는 <인간개발보고서 Human Development Report>는 경제개발과 사회개발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GNP뿐만 아니라 예상수명, 문자해독율 등을 합산하여 한 국가의 인간발전지수를 평가한다.
이어서 맞이한 1980년대는 ‘발전을 잃어버린 시기’다. 남미에서부터 불거진 국가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 속에서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의 정책 기조가 긴축예산, 무역자유화, 민영화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구조조정 정책 (Structural Adjustment Programme) 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채무국들에 강제되면서 공공부문이 약화되고 곳곳에서 빈곤이 오히려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1990년대에는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발전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회적 보호(Social Protection)가 개발 정책의 주요 이슈로 부상하는 한편 ‘사회개발’로 통칭되던 이슈들이 환경, 인구증가, 기아, 젠더, 도시화, 실업 등으로 구체화되고 다양해 졌다.
간략하게 살펴봤지만 50년에 거친 국제개발의 역사는 경제 성장 위주의 발전 개념이 사람과 사회를 보다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다양한 발전 개념으로 진화해 온 역사다. 그런데 이 진화는 성공인 동시에 실패인 역사다. 이 진화를 이끈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국제개발의 스펙트럼은 큰 이론이나 추상적 사고의 도약으로부터가 아니라 빈곤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감내한 고통에서부터 넓어졌다. 그리고 그 속도도 무척 더뎠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위와 같이 씌어진 이야기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UN이나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그들에게 컨설팅을 제공하는 전문가들, 대학과 연구소에 자리잡은 학자들, 그리고 자원과 영향력을 가진 선진국의 비정구기구 (NGOs)들을 본다. 국제개발의 한 시대를 이끈 패러다임은 – 그것이 경제성장이든 사회개발이든 – 이들 ‘외부인들의’ 책상에서 기획되고 호화로운 국제 컨퍼런스에서 대단히 말을 잘 하는 그들의 언어를 통해 세상에 알려 지고 그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이들 ‘외부인들’이 빈곤의 현실을 이해하는 과정은 판에 박힌 듯 비슷하다. 그들은 빈곤한 지역을 관광하듯 바쁘게 둘러보며 (‘development tourism’, Chambers, 1983m p11) 가난한 사람들에게 없는 것 (국제개발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수요’)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런 수요를 충족하는 일이 국제개발의 내용이 된다. 발전의 목표와 개발 활동이 내용이 빈곤한 사람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빈곤을 묘사하는 세련된 언어를 가진, 이론을 대단히 잘 구사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이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묘사할 수단이 없는 데 반해, 선진국의 학자나 활동가, 개발도상국의 중산층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답게 언어를 잘 쓸 줄 안다.
우리의 말을 내려놓고, 빈곤한 사람들의 말을 듣기
영국 서섹스 대학의 국제개발연구소 (IDS, International Development Institute)를 이끄는 로버트 챔버스 (Robert Chambers)는 국제개발을 둘러싼 지식권력과 힘(power)의 문제에 주목하는 학자다. 교육수준이 낮고 가난한 개발도상국의 지역 주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반면 선진국의 전문가들은 지식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국제개발 활동 또한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기획되고 실행된다. 그렇다 보니 현지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현지에 해를 끼치는 책상물림씩 활동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도시의 한 슬럼 지역에 변소를 비롯한 위생시설을 짓는 일을 예로 들자. 선진국이 학자나 활동가, 개발도상국의 중산층, 빈곤층 모두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이 사람이 건강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기 위한 필요 조건이라는 데는 모두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문제는 한정된 재화와 자원을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느냐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학자와 활동가들은 ‘비용대비효과성’ 이나 서비스 운영의 지속가능성’ 등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고 공중 변소를 지어 약간의 사용자 요금을 부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때 필요한 자원은 선진국의 개발원조나 민간 영역으로부터의 투자, 국제 NGO의 기부 등을 통해서 동원되는데,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 (human right) 대신 한 나라의 성장에 초석이 되는 ‘인적자원 (human capital 혹은 human resources)’ 을 개발하기 위한 ‘투자 (investment)’ 라는 수사가 쓰인다. 개발도상국의 중산층도 이런 정책을 선호한다. 공중변소를 건설 사업의 이권을 따거나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빈곤층에게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는 비즈니스의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슬럼에 거주하는 빈곤층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떨까. 답은 ‘모른다’이다. 이들 역시 선진국에 사는 여느 사람처럼 공중변소보다는 집안의 화장실을 이용하길 원할 수도 있다. 같은 나라안에서도 중산층이 사는 주거 지역에는 정부가 무료로 혹은 값싸게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를 왜 빈곤층이 밀집한 슬럼에서는 왜 비싼 요금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지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돈을 내고서라도 공중 변소라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랄 수도 있다.
이처럼 그곳의 사람들이 무엇을 정말로 바라는지 사실 우리는 잘 ‘모른다’. 이 예는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의 문제를 함축해서 보여준다. 나아가 빈곤층보다 발언권이 큰 외부 전문가에 국제개발의 방향과 내용이 정해지기 마련이므로 빈곤층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함을 함의한다.
챔버스는 ‘참여를 통한 개발 접근 (participatory approach)’를 통해 빈곤층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고 이들의 목소리가 개발 전문가들에게까지 들리도록 하며, 더 나아가 개발 활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주도권 자체를 빈곤층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hand over the stick”) 주장을 펼쳤다. 이는 외부인들이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힘을 인식하고 이를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 시작된다. 이는 국제개발의 전문가부터 현장의 자원활동가까지 모두에게 마찬가지다. 외부인인 ‘우리’의 말이 지역 주민들의 현실을 묘사하고 그렇게 그려진 현실이 지역 주민들의 앞날을 규정하는 과정에 깔린 권력 관계를 인식하기. 우리의 말을 내려놓고 빈곤층의 목소리를 듣기. 이는 우리가 그들보다 무엇을 더 알고 있다는 지식의 권력 관계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국제개발은 활동이기 이전에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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