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 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생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단계와 모르는 게 약인 단계를 오가며 살아왔다. 인간의 탐욕도 하나의 요인일 수 있겠지만 탐욕 때문에 전진과 후퇴가 반복된 것은 아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사이에는 환경 보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환경 운동이 상승세를 탔지만 화석연료 산업과 제조 업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고 정치적 압력까지 더해져 환경운동이 힘을 잃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이 문제가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또 다시 기득권자들에게 허를 찔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다시 생태계 파괴 문제의 해답을 찾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석유산업이라는 역사상 가장 막강한 산업에 몸담고 있는 부유한 자들이 그 열망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인 것 같다. 문제는 최근 되살아난 자각의 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생태적 병폐를 치유할 진정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분명 해결책은 있다. 하지만 정말 쓸모 있는 해결책을 찾으려면 먼저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에코의 함정, 23쪽)
'녹색 탈을 쓴 소비 자본주의'라는 부제를 단 책 <에코의 함정> (헤더 로저스 지음, 추선영 옮김)에서 밑줄. 하이브리드 자동차, 녹색 건축, 탄소 상쇄 기부금, 바이오 연료처럼 '시장을 지렛대로 삼아' 또 '소비자 행동'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지은이는 자동차 대기업의 중역 사무실부터 바이오연료 기름야자 나무 재배의 최전선인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까지, 미국의 대도시의 농민시장에서부터 기업화된 국제 유기농 무역의 확산으로 유기농 상품 플렌테이션이 증가하면서 지역 토착 생태계가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는 파라과이의 농촌까지를 여행하며 '녹색 탈을 쓴 자본주의'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치인과 기업가,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녹색' 해결책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책을 구석에 밀어 놓은 채 기존의 권력구조를 거의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거짓 해결책이라고 지적한다. 생태계 파괴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정치구조와 경제구조에 도전하지 않는 소비자 행동에는 그 행동이 목적하는 바를 달성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친환경, 에코라는 말이 차고 넘칠 정도로 환경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는 반면, 한때 우리의 무기였던 이 말들은 급격하게 제 힘을 잃어간다. 정치가 녹색을 이용하고, 시민이 소비자로 축소된다.
"문제는 최근 되살아난 자각의 힘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의 문제다."
"정말 쓸모 잇는 해결책을 찾으려면 먼저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저 문장이 마음이 와 닿았다. 책에서는 생태계 파괴를 두고 이야기했지만, 국제개발에 이를 비춰도 의미하는 바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빈곤을 권력과 불평등, 박탈의 문제로 보지 않거나, 빈곤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치밀하게 성찰하지 않는 빈곤완화 노력은 - 거짓 친환경 해결책과 마찬가지로 - 빈곤을 낳고 되물림하는 바로 그 정치구조와 경제구조를 되도록 위협하지 않도록 하려는 거짓 해결책이기 쉽다.
"어느 곳을 방문하든 그곳이 겪고 있는 생태 문제는 그곳의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국제 유기농 무역의 최전선인)파라과이에서 이뤄지는 단일재배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소농민들의 경제적 전망과 떼어 놓은 채 논의할 수 없다. (바이오연료 생산을 위해 숲이 빠르게 개간되는) 보르네오섬 생태계가 겪는 격변은 토착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분열이나 배신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과 이탄 습지는 정부 관리, 플렌테이션 기업, 다국적 기업의 기회주의와 부패에 결부되어 있다." (에코의 함정, 285쪽)
빈곤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으려면 바로 그 빈곤을 낳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정치구조와 경제구조에 물음을 던져야 한다. 녹색 제품을 구매해 환경문제를 해결하려는 '안락의자 환경주의' 혹은 '게으른 환경주의'를 닮은 국제개발 노력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문제는 "지금 다시 되살아난 자각이 어디로 나아갈지의 문제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빈곤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커져가는 관심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의 문제다. 그리고 "정말로 쓸모 있는 해결책을 찾으려면 먼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두 문장을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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