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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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학; 무엇에 쓰는 거지?! 빈곤, 국제개발, 개발학

국제개발학개론 첫 수업. 강사가 학생들에게 그룹별로'development' 혹은 'development stduies'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를 찾으라고 했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른 이미지 가운데 하나는 차표. 사람들을 A라는 곳에서 B라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지식 및 활동이라는 얘기인데, 이 이미지를 제시한 그룹은 A와 B의 차이를 GDP 등의 경제성장에 둘 것이냐, 북반구와 남반구 가운데 누가 A이고 누가 B냐, 기차는 정해진 선로를 달리는데 선로를 계획하고 깐 사람들은 누구냐, 차표가 왜 이렇게 비싸냐, 달리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정말 행복하냐, 맘에 안 들면 중간에 내릴 수는 있냐 등의 질문을 비오듯 받았다.
다른 그룹이 찾은 이미지는 물에 빠진 누군가를 구하는 장면. 이 그룹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방법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때마침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손을 뻗어주면 되는 것인지, 구명장비를 착용하도록 룰을 만들고 이를 보급해야 하는지, 어릴 때부터 전국민 수영교육 의무화를 실시해야 하는지 등등. 다음 질문은 "근데 저 사람이 대체 왜 물에 빠진 건데?" 하는 것.

서로 다른 그림이 말해주듯, 무엇을 발전 (development)이라고 볼 것인지 또 국제개발학 (Development Stduies)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제각기 다르다. 국제개발학이란 지식 커뮤니티안에서 연구를 하거나 현장에서 활동을 하더라도, 경제학자와 사회인류학자가 바라보는 발전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누구는 발전을 성장으로 정의하는가 하면, 다른 누구는 발전 (development)이라는 지식 혹은 언어 자체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들이 주로 포진한 세계은행은 발전을 빈곤의 감소로, 성장을 통해 얻는 것으로 본다. 

  • "The most effective way of achieving rapid and politically sustainable improvements in the quality of life of  the  poor… is the pursuit of a pattern of growth that ensures the productive use of the poor’s most abundant     asset – labour [and] widespread provision to the poor of basic social services.” (WDR 1990, p. iii)

아마티아 센에게 발전은 자유의 확장을 통한 역량의 실현이고, 개발은 자유에 대한 제약을 줄이는 데 목표를 둔 활동이다.
  • “Development can be seen as a process of expanding the real freedoms that people enjoy… Development requires the removal of major sources of unfreedom: poverty as well as tyranny, poor economic opportunities as well a systemic social deprivation, neglect of public facilities as well as intolerance or overactivity of repressive states” (Sen, 2001)

 삭스 (MDG를 이끄는 제프리 삭스와 다름)는 개발활동을 식민지배와 관련이 있는 구시대의 유물, 더 이상 필요없는 것으로 봤다.

  • The idea of development stands like a ruin in the intellectual landscape. Delusion and disappointment, failures and crime have been the steady companions of development and they tell a common story: it did not work. Moreover, the historical conditions which catapulted the idea into prominence have vanished: development has become outdated” (W. Sachs, 1992)

또 Leftwich는 개발 과정을 자원분배 및 활용을 둘러싼 것이라며, 정치적인 관점에서 해석했다.

  • ‘…processes of development in human societies always involve the organisation, mobilisation, combination, use and distribution of resources in new ways, whether these resources take the form of capital, land, human beings or their combination’ (Leftwich, 2000)

요약하면, 발전 혹은 개발에 대해 모두가 동의한 정의는 없다는 얘기고, 이것이 중요하다.

개발학은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생산보다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제해결에 중점을 두는 학문이고, 이를 위해 다양한 학문을 어우르는 접근(cross diciplinery)을  취한다. 다시 말하면, 문제의 발견부터 해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서로 다른 세계관과 인식론, 방법론,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연구하고 활동을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답답함, 충돌이 없을 수 없다. 학문적 엄밀함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큰 이론부터 작은 농촌 마을에서 엔지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밀당'이 오간다. 한 편에서는 수십년 간 축적된 통계 데이타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낳는 요인들을 설명하려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통계에 가려진 지역적 문화적 컨택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관심사다. 한 편에서는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객관적인" 지표들을 사용한 "엄밀한' 프로그램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한편, 다른 한 편에서는 지역 커뮤니티 속의 가치들을 숫자화 하는 것에 반대하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만이 '엄밀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요약하면, 무엇이 '엄밀한' 평가인가에 대한 해석부터가 다르다 ('the differing meanings of 'rigour'', Hulme and Toye, 2006).

일반적으로는 경제학이 개발학에서 일종의 링구아 프랑카 (공통언어가 없는 집단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공용어)로 통하는 경향이 있는데 (Woolcock (2007; 64)), 이를 경제학이 다른 바탕 학문에 비해 엄밀하거나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란하다. 실제로는 Hulme and Toye (2006)가 지적한 것처럼, 얼만큼의 목청을 낼지에 대해서도 바탕 학문의 문화, 정치력 등이 영향을 미친다. 예컨데,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보편적 정책으로 만드는 데 사회인류학자보다 자신감을 갖는 편이며, 그에 대한 경계심이 덜하고, 또 권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경향이 있은 반면, 사회인류학자들은 권력을 덜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편안해 하고 연구결과를 정책과 연결하는 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럼, 학제간 연구가 기본이 되는 국제개발학에 접근하는 방법 혹은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 가장 많이 들은 조언은,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을 일단 깊이 이해하고 (제발 좀)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간단한 그룹 세미나라도 하다보면 경제학자과 인류학자의 간극처럼, 옆자리의 동료와도 골이 깊은 싸움을 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우리는 빈곤층이 주거하는 산간 농촌 마을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 문제는 어렵고 또 너무 중요해서 토목 기사 한 명, 혹은 경제학자 한 명에게만 맡겨두기 어렵다.

두 번째는, 언제나 개발 혹은 발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라는 것. 살펴보았듯, 개발 혹은 발전에 대한 정의부터가 제각각 다르고, 그것을 통해 이루려는 것도 다르다. 이는 각 사회, 학문, 지역이 거쳐온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중요하게는 인간의 삶, 우리가 쫓는 가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실한 처방보다는 가능한 방법들을 찾고, 객관적 문제인식을 추구하기보다는 문제인식의 주관성 자체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 개발에 대한 어떤 주장을 접하면 이를 비용효과성의 문제 혹은 효율과 효과의 문제로 축소하기 이전에, 그보다 먼저 그 주장이 바탕한 가치 (무엇이 발전이고 개발인지, 어떤 사회가 인간성 혹은 존엄을 실현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는지 등)를 짚어봐야 한다. 

그래서 국제개발학 수업의 대부분은 어떠한 개발 주장에 깔린 프레임이 무엇인지를 읽어내고, 그로부터 누가 이익을 혹은 손해를 보는지 짚어보는 데에 대한 연습으로 이를 예방하거나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으로 채워진다. 이걸 하려고 역사도 배우고 경제학도 배운다.

크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조조정을 작게는 지역 단위의 프로젝트를 다루지만 보려는 것은 같다. 이를 테면,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시행된 구조조정정책이 농촌의 기초보건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왜 지역의 우물 사업과 정부의 기초 서비스 보급 정책이 서로 무관하지 않은지, 공여국의 특정 ODA 정책이 파트너국의 해당 분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긴급구호 캠프에서 식량을 나눠주는 일에도 젠더 관점이 필요한지, 한 지역의 젠더 분석을 하기 위해 특정 프레임워크를 썼을때 이 때문에 소외되고 가려지는 사람은 혹시 없는지 하는 등의 질문이 매 시간 수업의 주제가 되는 식이다. 이렇게 시간을 쌓다보면, 명확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떤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고, 특정 주장이 어디서 서 있는지, 나는 어디서 설 것인지를 가늠할 기준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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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김가루 2011/11/04 17:06 # 삭제 답글

    하여튼 글 참 쫄깃쫄깃 잘 쓴다니까!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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