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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 아이가 굶어죽어갑니다." - 식량위기 이해하기 (1) 식량위기. 영양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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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 아이가 굶어죽어갑니다." - 식량위기 이해하기 (1)
'생산의 문제에서 접근성의 문제로' - 식량위기 이해하기 (2)
식량 수급 정책의 변화와 소농의 소외 - 식량위기 이해하기 (3)
소농을 위한 현금지원 (Cash Transfer) 프로그램의 가능성 - 식량위기 이해하기 (4)

‘지금 한 아이가 굶어죽고 있습니다.’

"식량위기(Food insecurity)라고 하면 캠페인 어필이 안 되고, 기아(famine)라고 하든지 아니면 더 직접적으로 '지금 한 아이가 굶어죽고 있다'하고 해야 관심을 끌 수 있다." 국내 한 국제개발 NGO에서 캠페인 및 모금 담당자로 일하는 분의 말이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Food crisis, Food security 혹은 insecurity라는 말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지부터가 어려우니 말이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은 '식량위기' ‘식량안보’ 나 ‘식량안보위기’인데 이 번역어는 집합적 상태를 언급할 뿐 누가 어디에서 어떤 사정 때문에 얼마나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드러내지 않는다.

NGO 캠페인을 위해서는 대체로 통계나 숫자를 들어 상황의 심각함을 보이기보다 특정한 누군가를 들어 그 사람이 겪는 곤궁을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식량안보라는 말로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농사를 지어 비축해둔 곡식이 다 떨어진데다 시장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도 어려워서 온 식구가 끼니를 줄이고 가축이며 살림을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을 두고 “우리 집 식량안보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럴 때는 우리 식으로 하면 ’쌀독에 바닥이 보이는‘ ’집안 세간 내다팔아야 하는‘ 혹은 ’피죽도 못 먹는 보릿고개‘인 경우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상황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황이지 ’눈 앞에서 한 아이가 굶어 죽어가는‘ 장면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기아(famine)이나 굶주림(hunger)라는 말로도 이런 상황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기아란 말을 쓰는 경우는 이라크(1990년대), 북한 (1990년대 후반부터), 수단(1998), 에티오피아 (1999/2000), 말라위 (2001/2)), 소말리아 (2011) 정도다. 어떤 상황을 기아(famine)라고 볼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긴 하지만 5세 이하 영유아 사망률, 인구 만 명당 사망률, 영양실조율 등의 지표가 특정 지역에서 단기간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급증할 때 (기관마다 기준이 다르다) 비로소 '기아'이라고 한다. 즉, 만성적 식량위기, 긴급 식량위기 등을 모두 넘어서는 가장 긴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이 말을 쓴다.

이 용어의 사용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기아가 선포되면 최고 수준의 긴급구호 체계가 대대적으로 발동되고 그 상황에서 기존의 지역경제가 잇달아 큰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생명을 지키는 긴급구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이 없지만, 긴급구호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상황은 조심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불가분 득을 보는 집단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생기기 때문이고, 평상시의 개발(development) 노력의 중단되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만성적인 식량위기에 노출될 취약성이 더욱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아에 대한 긴급구호는 때때로 점진적인 곡물 시장 발달을 저해하기도 하는데,  2001/2년 말라위에서는 이미 식량위기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지역 도매상들이 소농에게서 사들인 곡물을 창고에 쌓아두고 상황이 '기아'로 치닫기를 기다
리거나, 국경 지대에서는 식량수매를 담당하는 국영기업 ADMARC가 연루되어 잠비아로부터 곡물을 수입하려는 도매상들에게 굉장히 까다로운 세관통과 기준을 적용하며 식량수입을 지연시킨 사건이 있었다. 기아가 선포되어 긴급구호 물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곡물 가격이 더 오르고, 외부로부터의 원조가 유입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처럼 ‘기아’도 당장 한 아이가 굶어 죽어가는 극단적 ‘굶주림’도 아닌 것이 식량위기의 보다 보편적인 현실이라면, 식량위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긴급’ 혹은 ‘위기’ 상황으로만 바라보는 접근에서 시야를 넓혀,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 안에서 누가 왜 식량위기, 누가 이 같은 상황으로부터 이익을 얻는지를 겪는지를 보다 분석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에티오피아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2011년까지 20여 년이 넘도록 매해 식량위기를 겪으며 식량 원조를 받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식량위기가 ‘긴급’ 상황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에티오피아 식량위기는 심각한 가뭄 외에도 농촌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농에 대한 지원 정책의 미흡함, 곡물 시장의 열악함, 이웃 소말리아의 정부군과 이슬람군의 내전으로 인한 난민 유입 등이 중첩되어 일어나는데, 이들은 모두 ‘긴급지원’만으로는 적절히 대처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참고로, 2011년 Horn of Africa food crisis는 그 심각함의 정도에서 이전과 구분되어 유엔에 의해 기아(famine) 상황으로 선포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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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델피 2011/10/25 23:45 # 삭제 답글

    국내에 번역된 '기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라는 책을 읽으면서 식량위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모든 문제가 그러하겠지만 특별히 식량위기의 파급효과는 빈곤, 인권, 영유아 사망률, AIDS 등
    아프리카의 모든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어 문제의 심각성은 높은 반면,
    대규모 기아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니, 식량안보문제는 강대국 -미국,유럽- 의 정치적 세력과 은밀한 관계에 놓여 있더라구요.
    기아가 발생할 시 해당 국가 내에서도 이익을 누리게 되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뉘지만,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이로 인해 혜택을 누리는 또다른 집단이 있죠. 강대국의 부유한 농부들 말입니다.
    참 복잡한 이슈인 것 같아요. ^^;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식량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식량위기 시리즈 포스트가 인사이트를 주는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ps)아 그리고 저는 비전공자 학부생이지만, 개발학에 관심이 있어서 종종 들어와 보는데요.
    참 유익한 글이 많아 큰 도움이 되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
  • cklist 김현주 2011/10/26 11:01 #

    델피 님, 댓글 고맙습니다.

    블로그 종종 오신다니 더 반갑네요. 식량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개인부터 지역사회, 국가, 기업,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두루 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식량과 관련한 일을 해보고 싶은 꿈 혹은 바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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