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의외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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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말을 잘하는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 혹은 개발학 리플렉션 노트

소설이 학구적이 되어가는 트렌드에 대해 염려되는 두 번째 이유는 말을 대단히 잘하는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다.....흠, 그것은 약간 속임수가 아닌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의 주인공, 그러니까 시인의 아버지이자 사위인 헨리 퍼론은 신경외과 교수에, 그의 아내는 기업담당 변호사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사람들답게, 그들은 언어를 잘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 자신의 삶에 대해 매우 직설적으로, 명징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퍼론은 "자신의 기분을 습관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매큐언이란 작가의 존재가 그들에게 낭비되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는 메큐언의 도움이 필요 없다. 내가 픽션에서 좋아하는 점은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 아니 최소한의 자신의 감정 상태를 묘사할 수단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대신 똑똑하게 말해줄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그런 식으로 마크 트웨인이 똑똑했던 것이고, 디킨스도 그랬다. 그리고 로디 도일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 특히 책을 자주 사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내게는 엄청나게 유식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유식한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능력보다는 그것이 더 뛰어난 재능처럼 여겨진다.

닉 혼비의 <런던 스타일 책읽기 the Complete polysyllabic spree >에서 공감한 부분. 영국 와서 공부하면서 이 과정이 일종의 개발학 랭귀지 스쿨 같다고 느꼈던 때가 있다. 누가 어떤 글에서 livelihoods 라고 하면 그냥  사전적 번역어인 '생계'를 지칭하거나 떠올리는 것이 아닌 livelihoods approach의 시각에서 그 논의의 연장선에서 '아 지금 이 글이 어디서 서서 무엇을 바탕으로 깔고 어떤 것을 주장하는구나' 하고 읽게 되는 것처럼.

지금 이렇게 공부하는 내용들이 혹시 개발학이란 언어를 대단히 잘 쓰는, 한 학문 체계 내에서 박사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어휘와 문장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내가 그 말 자체를 욕심내는 것은 아닌지 이따금 생각하게 된다.

지금하는 이 공부가 의미있는 이유는, 이 학문이 마트 트웨인과 디킨스의 소설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드러나도록' 혹은 '들리도록' 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럼, 누구의 목소리가 어떻게 드러나야 하고, 그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또 듣는 사람은 누구여야 할까.

세련되어 보이지만 정작 뜻을 헤아리지도 못하는 말을, 영어 단어 외우듯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 순간 스치는 챔버스 님의 얼굴).

내 언어가 오염되지 않도록, 대단히 말을 잘하는 사람들의 말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가장 먼저 밝은 귀를 가질 필요가 있다.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지, 어떻게 해야 그것을 잘 할지 열심히 고민하고 방법을 익혀야 한다. 쓸데없이 마음 자리를 어지럽히지 말고, 남의 얘기를 들을 공간을 늘 마련해 두어야한다. 빈틈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지. 마음 가지런히, 머리는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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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진이 2011/04/21 09:14 # 삭제 답글

    멋지십니다. 그 마음 변치 말기를 바라요!
  • cklist 2011/05/25 19:13 #

    늦은 인사네요. 말씀 잘 새겨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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